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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대장만으로 '다음 정비구역'을 점수로 그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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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대장만으로 '다음 정비구역'을 점수로 그릴 수 있을까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될 만한 동네가 어디인지는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 판단합니다. 오래 다닌 중개사의 경험, 직접 도는 발품, 누가 추진위를 꾸린다더라 하는 소문.

그런데 그 판단의 1차 재료, 그러니까 건물이 얼마나 낡았는지와 구역이 법정 요건을 채우는지는 이미 국가가 공개해 둔 데이터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해봤습니다. 시군구와 법정동 코드 하나만 넣으면 지도 위에 노후 구역을 점수로 칠하는 작은 엔진을 만들어 본 것입니다. 이 글은 그게 어디까지 되고 어디서 막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정비구역 '발굴'이란 무엇인가

재개발·재건축은 아무 동네에서나 시작되지 않습니다. 법은 사업을 시작하려면 일정한 요건을 채우라고 정해 둡니다. 노후·불량 건축물 비율, 구역 면적, 호수밀도, 도로에 접한 비율(접도율) 같은 것들입니다.

'발굴'은 어느 동네가 이 요건을 이미 채우고 있는지를 미리 찾아내는 일입니다. 조합이 만들어지고 구역이 지정되기 한참 전에, "여기는 숫자상 될 조건이 갖춰져 있다"를 먼저 알아내는 것이죠.

핵심은 이 1차 요건의 상당 부분이 이미 공개 데이터만으로 계산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공공데이터로 그릴 수 있나

지도 한 장을 그리는 데 필요한 데이터는 네 가지입니다.

데이터출처무엇을 얻나
건축물대장국토교통부 공개 API건물 사용승인일 → 30년 경과 여부 → 노후도
동 경계V-World 행정경계 GeoJSON지도 위에 구역을 그리는 바탕
도로망OpenStreetMap도로로 둘러싸인 한 덩어리(가로구역) 추출
법정동 코드공개 코드 데이터시군구·동을 가리키는 입력값

모두 무료이고, 등기부 같은 개인정보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건물의 나이와 용도, 도로의 위치처럼 공개된 사실만 씁니다.

도로로 구역을 자르고, 노후도로 점수를 매긴다

지도 한 장은 네 단계를 거쳐 나옵니다.

법정동 코드 하나
   → 건물 분류     사용승인일로 노후·신축·상가 구분
   → 거리 묶기     가까운 노후 건물끼리 덩어리로
   → 도로로 자르기  도로 그래프를 면으로 닫아 가로구역 추출
   → 요건 판정     노후·면적·접도율로 등급 매김
  1. 건물 분류. 대장의 사용승인일을 보고 30년이 넘으면 '노후'로 표시합니다.
  2. 거리 묶기. 가까운(약 40m 이내) 노후 건물끼리 한 덩어리로 묶습니다.
  3. 도로로 자르기. OSM 도로망을 평면 그래프로 보고, 도로로 둘러싸인 면을 닫아 '가로구역'을 뽑습니다. 실제 구역 경계가 대개 도로를 따라 그어지기 때문입니다.
  4. 요건 판정. 각 가로구역이 노후 60%·면적 1만㎡ 같은 1차 요건을 채우는지 등급을 매깁니다.

은평구 갈현동에 돌려본 결과

서울 은평구 갈현동 하나에 이 파이프라인을 돌렸습니다. 아래는 실제 데이터로 검증한 값입니다.

  • 동 전체 건물 중 노후 63%, 신축 6%. 노후 주거 건물만 576동.
  • 도로로 잘라낸 가로구역 356개 블록 중, 1차 요건을 통과한 정비 후보 32개를 추렸습니다.
  • 32개를 등급으로 나누면 재개발급 5개, 가로주택정비급 27개.
  • 가장 점수가 높은 구역 하나를 열어 보면, 경계 안 244개 건물 중 188동이 철거 대상, 53동 존치, 상가 2동입니다. 이 구역만 따로 보면 노후도가 **77%**까지 올라갑니다.

동 하나에 코드 한 줄을 넣어 나온, 사람이 발품으로 좁혔을 후보의 출발점입니다.

데이터가 아직 못 하는 것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이 점수는 "될 조건"이지 "된다"가 아닙니다.

접도율 같은 일부 지표는 아직 거칠게 잡힙니다. 도로 그래프에 좁은 골목까지 들어가서, 접도율이 82%로 실제보다 높게 나오는 식입니다. 숫자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되고 판정 사유를 함께 봐야 합니다.

더 큰 한계는 발굴이 '될 조건'의 첫 신호만 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한 구역을 다섯 축으로 봅니다.

  • 될까 — 노후·법정 요건
  • 남을까 — 사업성
  • 빨리 될까 — 주민 동의·속도
  • 팔릴까 — 입지·수요
  • 안 꼬일까 — 분쟁·리스크

지금 공개 데이터만으로 단단히 채운 축은 첫 번째 '될까' 하나뿐입니다. 사업성, 주민 동의, 소송 같은 나머지는 실거래·정비현황·판결문처럼 다른 데이터와 사람의 검증이 있어야 채워집니다.

발굴은 가설을 세우는 일이고, 검증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등기부나 개인정보를 쓰나요?

아니요. 건축물대장의 건물 나이·용도와 공개된 도로·경계 데이터만 씁니다. 소유자 개인정보는 발굴 단계에서 다루지 않습니다.

노후도는 무슨 기준인가요?

건물의 사용승인일을 기준으로 30년이 넘었는지를 봅니다. 동 전체가 아니라 구역 후보별로 다시 계산하기 때문에, 갈현동 사례에서는 한 구역의 노후도가 77%로 나왔습니다.

이 점수만 보고 투자해도 되나요?

안 됩니다. 점수는 '될 조건'의 1차 신호일 뿐, 사업성·동의·분쟁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후보를 좁히는 출발점으로 쓰고, 실제 판단은 추가 검증 위에서 하시길 권합니다.

그래서, 점수로 그릴 수 있을까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건축물대장만으로 '다음 정비구역'을 점수로 그릴 수 있느냐. 답은 "후보까지는 된다, 결론은 아니다"입니다.

공개 데이터는 사람이 며칠 발품으로 좁힐 후보를, 코드 한 줄과 몇 분으로 좁혀 줍니다. 그다음 사업성을 따지고 현장을 확인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다만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가 분명해질 뿐입니다.

씨트리하우스랩은 이런 데이터 실험을 정비사업의 여러 단계에 붙여 보고 있습니다. 발굴에서 사업성 분석, 기록, 의사결정까지, 흩어진 공공데이터를 한 화면에서 읽히게 만드는 일입니다.